• 시상(詩想)을 소조(塑彫)한 청사 이기주의 백자세계

    경성대학교 교수∙공예학 박사 권 상 인

    선생은 도예가의 길을 조각가로서 시작하였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시절에는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구상조각을 석고를 매체로 작품화하였고, 갓 졸업 후의 작품들은 지도교수인 金鍾暎, 金世仲 교수의 인체의 Form에 영향을 받아 양감이 과장된 유니크한 Form의 인체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그의 청년기의 작업들은 그 후 선생의 도예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선생이 흙을 塑彫로 하여 불에 굽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66년부터이며, 1970년대 작품은 부산근교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암벽을 오브제로 가져오거나 또는 바다풍경을 추상화시켜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들이다. 테라코타표면에 시유(施釉)하여 유약의 효과를 살려내는 도예가의 실험적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작업과정이 선생이 도예가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 초 작품의 모티브는 대개 70년대와 동일하나, 표면유약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 새로운 스타일의 도입과 다양한 도예적기법이 가미되어 종전의 Form에서 일탈하고 있다. 작품에 내재된 조각적 요소들이 유약과 소성에 의해 조각의 세계와는 또 다른 Form의 이미지를 주는 작업을 하여, 도예도 아니고 또 조각도 아닌 자기 주관적 조형예술을 추구해 갔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에는 다시 1960년대의 반추상적인 표현양식으로 되돌아가, 인체나 동물의 Form을 절묘하게 변용시켜 묘사하고, 시유와 소성에서 자기만의 기술을 구사하였다. 도자예술이 표현할 수 있는 특수한 효과를 표출시키고자 노력한 흔적이 당시에 제작된 작품들을 관찰하면 나타난다. 1990年 서울 소재 「하나로 미술관」 초대전에 출품된 「처용무(處容舞)」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의 긴 여정에서 때로는 수년간 만넬리즘의 늪에 빠져들 때 마다, 그가 탈출하는 방법은 특수하다. 모든 Form의 기본구조인 인체로 되돌아가 이미지를 가다듬고 에너지를 재생산해서 새로운 조형세계를 창조적으로 구축해 내는 방법은 공예를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부럽기만 하다.

    90년대 초의 작품은 구성이 간명(簡明)하나 결코 단순하지 않고 정적인 분위기내면에 팽팽히 감도는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Form의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연관과 안면(顔面)같은 섬세한 세부의 표정묘사와 Mass의 강조가 두드러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부터 간간히 시작한 백자작업은 차갑기만 한 느낌을 주는 선생의 또 다른 작업이지만 도토(陶土)위에 두껍게 시유된 부드러운 유조(釉調)는 투명하게 가라앉은 고전백자에 비하여 색다른 정감을 준다.

    제10회 개인전에는 두 개의 세계, 즉 器의 藝와 오브제의 藝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오브제작품은 인체를 입방체로 축소하여 극도로 간결하고, 세부가 절제된 From을 특색으로 한다. 기하학적이거나 기호적인 장식들은 조선조 백자 도공들이 도출해 낸 고전적장식의 감정과는 또 다른 것이다. 현대적 소성 장비를 운용하여 1330℃를 능가하는 고열과 정선된 Kaolin의 성분에서 0.01%의 산화철함량도 허용치 않은 치밀한 혼련(混練)과정을 거친 점토로 연출해 내는 그의 영청(影靑)색 백자는 소성기술과 재료를 장만하는 치밀함에서 돋보이는 모습으로 필자에게는 기억될 것이다.

    器와 오브제를 동일한 재료와 소성으로 완성하되 器는 물레성형으로, 오브제는 型塑彫로 성형한 것이다. 용기와 오브제를 동시에 전시함에 있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이번 전시를 통하여 감상자가 느끼는 것은 두 부분의 藝를 동질적 예술로 보는 선생의 지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말을 간추리면 선생의 작품들은 극도로 생략된 Form을 본질로 하였으나 작품개체로서는 완전함을 유보한 것이 특징일 수 있다. 그러므로 감상자의 마음에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눈 덮인 산야이거나 얼어붙은 겨울강의 이미지 등으로 나타난다. 오브제의 경우나 그릇의 경우 한결 같이 바람, 바위, 들녘, 구름, 산 풍경 등을 연상(聯想)하게 된다.

    선생님의 작품들은 저―설원의 詩想을 머금고 있어서 좋다.
  • 作品 「대관령」에 붙이는 글

    경성대학교 교수∙공예학 박사 권 상 인

    마이욜이 여체를 빌어 어머니의 숨결같은 지중해 풍경을 묘사하였듯이 선생의 2000년 이후 작품들은 주로 구상적 여체가 주제이다. 2001년 연구년을 마치고 이태리에서 귀국한 후 현재까지 제작한 20여점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사실적으로 묘사한 인체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춘추를 감안할 때 사실주의적 표현작가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인상파시대 이후 미술가들의 일생을 통한 양식적 변모를 들여다보면 대개는 청년기의 사실주의적 작품경향에서 장년기에는 non-figuratif(비구상예술)에 물들고 노년기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고정되어지는 것이 통례인 것을 감안하면 그는 청년기의 사실주의적 작품경향에서 비구상에 물들었다가 추상의 방향으로 가지 않고 다시 구상적인 세계로 선회한 것이다.

    선생이 회고전을 위한 소성을 마친 후, 다음날 가마문을 열고 거둔 작품 「대관령」은 고개 숙인 단발머리 여인이다. 층층이 여러 겹 올려진 백색유약과 태토의 색상들이 어우러져 일구어내는 세한(歲寒)에 눈 덮힌 찬란한 산봉우리 풍경... 그 순간 필자는 작품 「대관령」앞에서 마이욜이 고개숙인 여인을 소조(塑彫)하고 「지중해」라 불렀던 이유를 새삼 상기하였었다.
    70년대로부터 80년대에 걸쳐서 선생의 작품경향은 바닷가에 웅크린 바윗돌의 부분을 잘라낸 것 같은 이름 모를 비구상적 작품들이 주류이었다. 회고전 도록 「제3장 바람과 비」 시리즈 작품들은 주로 점토를 가지고 크로키 하듯이 단시간에 걸쳐 무의미하게 소조하여 석고로 떠서 프롯타쥬한 부정형적 형상들이었다. 이렇게 프롯타쥬한 괴체들을 건조하여 시유과정을 거쳐 고화도로 번조해 냄으로서 영속적 시간속에 풍화되어가는 바위덩어리 같거나 혹은 흘러내리는 먼 청산자락의 모퉁이를 잘라낸 것 같은 형상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90년대 초반 하나로 미술관 초대전에 출품된 작업들은 비구상적 괴체에서 일탈하여 극도로 압축되고 생략된 인체로 되돌아간다. (회고전 도록 「제1장 詩想의 塑彫」 P.18-30 참조) 이 전시에 출품된 「처용무」에서 볼 수 있는 유약의 엉김 밑으로 학무(鶴舞)를 연상케 하는 볼륨의 동세는 문학성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저온으로 번조한 권진규의 테라코타에 비하여 고온과 환원의 불길로 연출해 낸 이 반추상적 작품은 향가의 짙은 토속적 향기를 머금고 있어서 가슴에 와 닿는다.

    1996년 「일본 도예의 숲」에 초청되어 5개월에 걸쳐 제작된 「비파호」, 「화신」, 「축제의 밤」 등 대형작품인 군상을 통하여 선생이 보여준 창조의 세계는 현대도예의 성형, 표면유약, 번조기법의 한계를 초월하는 기록적인 작품들이었다. 특히 「화신」은 2m를 상회하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군상으로 바닥으로부터 손으로 소조하여 쌓아올린 작품이다. 소성하기 위하여 가마문을 닫을 때 일본인들이 붙인 명제이다. 소성에 성공하면 작가가 드디어 신이 된다는 농담에서 비롯된 명제이다.

    기물(器物)제작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였는데 특히 조선조시대 민간요 사발(砂鉢)에 관한 관심은 특별하였다. 도예에 관한 수업은 받은 사실조차 없지만 몸으로 부딪치며 체험으로 쌓아올린 전통사발에 관한 애정은 남다르다.

    30여년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와 초현실적 그림을 연상시키는 백색 주조의 「대관령」은 어쩌면 96년 일본 시가라키에 있는 「도게이노 모리 (陶藝의 森)」에서 제작한 「화신」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대관령」은 미묘한 표면 釉調를 발색시키기 위하여 한 개의 작품을 8년간에 걸쳐 20여 차례 소성하여 얻어낸 환상적 설경이다. 8년간에 걸쳐서 끊어질 듯 이어져간 긴 세월의 사유(思惟)를 따라 정리되어진 이미지가 마침내 고정되는 선생 특유의 작법은 가히 초인적이다.

    아직도 예측할 수 없는 길로만 급주행하는 선생의 작풍을 점치는 것 보다 다음은 어떤 작품으로 또 얼 만큼의 세월이 간 후 우리 앞에 개성있는 괴체로 그가 현현(顯現)할 것인가를 기대해 본다.
  • 작가의 본질 탐구

    (사)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 · 예술학박사 권 상 인

    이 글은 필자가 작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한 내용이다. 유년시절부터 중등학교까지 성장내용의 단면을 통하여 독자의 작품 감상에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하게 서술하였다.

    이기주 선생께서는(이하에서는 선생으로 표기 함) 용인시 기흥면 신갈리에서 태어났다. 한 살 때 만주 연변으로 옮겨가 양떼가 풀을 뜯는 풀밭너머로 혜란 강이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의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다섯 살 때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평소 궁금하게 여기던 초원너머로 보이는 강가에 도착하여 갈대사이로 펼쳐진 하얀 오리 떼의 비상과 유영의 장관을 훔쳐보며 놀았다. 그때 강가에서 강물로 뛰어들어 잠수하는 개구리를 발견하고 그 한 마리를 포획하기 위해 귀가하는 것을 잊어렸다. 노을이 질 때까지 개구리잡기에 집중하다가 황혼 무렵 흙탕물투성이가 되어 집에 도착해 어머니에게 피멍이 들도록 종아리를 맞았던 유년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해방이 되어 귀국한 선생은 화성시 양감면 대양리 외가 마을로 이주하여 살았다. 양감초등학교 교사가 된 부친께서 개구쟁이 기질이 극히 심해 매일 집과 마을에 말썽을 불러일으키므로 문맹퇴치를 위한 성인들로 구성 된 한글 강습반에 강제로 입학시켰다. 입교한 첫 수업시간에 문득한글의 모음과 자음 결합을 깨우쳐 순간적으로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한문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동안 동리의 글방에 출석하여 명심보감을 읽기 시작하여 방학이 끝날 무렵 중국 전국시대 통감(通鑑)을 배우다 문리(文理)를 얻었다. 선생은 80줄에 들어선 이 나이에도 중등학교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시와 수필들을 암송 할 정도로 암기력이 탁하다.

    예술 각 분야에 관하여 일찍이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음악에 관한 기호도가 높아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 수십 곡을 원어로 부를 정도이다. 특히 토스카 중에서 「E lucvan le stelle」는 반주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탁월한 음악적 소양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음을알 수 있다. 그러했음으로 선생 부친께서는 문학을 전공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수원농업고교 재학 중이던 1956년경, 조소에 탁월한 견해와 실기를 지녔던 생물교사와의 조우로 조소에 입문하여 미술학원에서 공부하지 않고 독학으로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하였다.

    중학교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 한다」에 영향을 받아 대학시절 때맞추어 창설된 학군단(ROTC)에 입단하여 육군소위로 임관되고 전방부대 보병소대장으로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였다. 졸업 후 은사였던 조각가 김세중 선생 추천으로 1966년 가을 경남공고 요업교사로 부임하여 부산시민이 되었다.

    이번전시는 2005년 경성대학교 정년퇴임 후 15년 동안 제작한 100여점의 신작 테라코타와 회화들을 모아 기장군 일광면 문중리에 문을 연 이기주미술관LeeKiJoo Ceramic Art Museum과 해운대 산목미술관Sanmok Art Gallery에서 동시에 작품전을 갖게 되었습다.

    청사 이기주선생의 신작들을 여러분에게 선보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청사 이기주의 테라코타에 관한 소고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 겸임교수 조형예술학박사 정혜주

    선생은 1960년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60년대 후반기부터 테라코타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조소전공자로 도예계에서 활동한 한국의 유일한 작가이다. 일본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귀국한 권진규가 조선일보 주최의 현대미술공모전에 초대되어 전시한 검정색 ‘말머리(馬頭)’형상이 한국 삼국시대 토기를 연상시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술회한 것을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고화도로 번조(燔造)하는 오브제작품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선생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야성적 본능은 도예적 표현방식의 한계를 초월하여 도예계를 압도한 작가 중 한명이다.

    1997년 일본 시가라키Sigaraki ‘도예의 숲Forrest of Ceramics’에 초대되어 그곳에서 제작한 구상적 작품 ‘비파호the Bipa Lake’ ‘화신God of the Fire’등 걸출한 작품들은 현지 미술관과 야외 조각공원에 전시되어있다. 이보다 앞선 시기인 1970~80년대에는 조소적인 인체묘사와 결별하고, 크로키 하듯이 단시간 내에 소조성형하거나 캐스팅 성형하여 해변의 바위형상인 Mass를 만들어 비구상적 시리즈들을 발표하였다. 각종 금속산화물을 칠하거나 유약Glaze을 바르고 1330℃ 고화도로 번조함으로 요변을 이끌어 낸 일련의 추상적 작품들은 오브제도예의 기교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실험적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감수성이 예민했던 대학시절 인체표현에 쏟아 부우며 지낸 학부 4년 과정에서 이미 내면세계의 근원에 응축되어버린 인체의 미학을 자기의 작품 속에서 완전히 제거해 버린 추상적 작품을 돌아보면서 문득 공허함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고백은 결국 이 작가에 있어서 인체의 구상적 형상은 자신의 예술의 근원이자 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영원한 그리움과 같은 것이었다.

    1990년 이후의 작품에서는 구상적 인체가 압도적으로 다수를 유지한다. 도라지꽃을 한아름 안고 수줍게 고개 숙인 ‘5월May’의 신부를 연상시키는 여인상. 세한(歲寒)의 태양에 을 비치는 눈 덮힌 찬란한 ‘대관령Daekwanyung’. 늦가을 고요한 밤하늘을 고개를 들어 관망하는 ‘은하the Galaxy’라는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시상(詩想) 혹은 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조형적 감상을 넘어서서 응축한 Mass와 Narration적인 유약과 조우하여 독창적 조형세계를 창출 해 내고 있다.

    2006년 이후 선생은 사실적이거나 구상적인 혹은 추상적 작품경향, 그 궤적에서 일탈하여 삼라만상에 담겨져 있는 기본구조의 내용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다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말, 소, 인체, 군상, 두상 들.. 이 시리즈들은 또 다른 면, 혹은 새로운 면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만의 추상으로 가는 여정의 기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형상은 더없이 단순해지고 저온번조에서 테라코타의 표면색을 그대로 노출시키기 시작하였다. 민낯을 드러낸 황토는 화염의 기운을 얻어 저-고인돌시대의 토기인 홍도(紅陶)같은 원시적 감각이나 사상을 되살려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선생은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70고개에 접어들면서 애착하기 시작한 황토색은 어쩌면 우리민족성과 서정을 상징한 색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2020년 제작한 승무(僧舞) -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달빛에 비친 불교법의에 하얀 소매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 그윽한 춤의 분위기로 공간이 충만 되어있다. Form은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어 간명하지만 함축된 승무의 간결한 포즈에 묻어나는 ‘오동잎 잎새마다 지는 달’의 문학적 추상개념을 형상(Form)의 시로 응축시킨 신천지이다.

    이제는 80줄에 들어선 선생의 작품,, 그 그늘아래 필자의 학문으로의 세월 또한 20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이다. 내 젊은 시절 선생에게서 초인적 힘을 느꼈고 그렇게 치밀하고 섬세한 혼연일체의 작업 방식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길과 삶을 배웠다. 선생의 주변에는 항상 음악과 시가 있었고 한편의 소설이기도한 인생을 들으며 문학성에 물들었던 때를 회상해 본다.
    선생의 혜안과 무진한 작품세계에 마음이 기울어 오늘도 함께 길을 걷는다.
  • 응축과 확산, 명상과 사유의 조응

    이동석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미술평론가

    이기주의 작품에서 제일 먼저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그 서늘하고도 맑은 백자의 빛깔이다. 투명함이 켜켜이 쌓여 은근하게 배어 나오는 눈 시린 영청(影靑), 주위의 공기와 빛을 절도 있게 머금고 있는 그 빛깔은, 마치 청명한 가을날, 눈부신 햇살이 차가운 물 위에 설핏 스민듯한 인상을 준다. 빛과 그림자를 가로지르는 색조가 있다면 바로 작가의 백자가 보여주는 빛깔이 아닐까?
    한국의 민족적 정서와 결부시켜 흔히 거론되는 백자의 색조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비어있음과 충일함’을 포괄하는 색깔이다. 그것은 색조 이전의 색조이자 색조 너머의 색조이다. 빛과 밀접한 친화성을 지닌 그 백색은 찰나의 색채이며 궁극과 무한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색채이다. 또 그 백색은 내부를 단아하고 절도 있게 담아내는 함축성을 지님과 동시에 외부를 향해 끊임없이 확산되는 가능성의 색채이다. 그 흰빛의 풍부한 암시성 위에 얼음 같은 투명함이 스민 상태가 이기주의 백자에서 나타나는 빛깔이다.
    ‘새벽녘에 내려앉은 서늘한 달빛’ 혹은 ‘눈밭에 드리워진 나무 그늘’을 연상시키는 그 흰빛이 주는 느낌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것이다. 그것은 삭히고 삭혀 승화된 슬픔이나 누적되어 정련된 한(限)과 관련된 정감이다. 물론 한국적 감성이나 정서를 이렇게 일반화하여 개별 작품을 보는 것이 분명히 한계가 있지만, 그 빛깔이 한국민족의 보편적 정서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도 힘들다.
    물론 작가의 작품은 전통 백자에서 우러나오는 “담담(淡淡) 하고, 후후(厚厚) 하고, 청청(淸淸) 한” 빛깔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한 사람의 작가가 일생을 걸려 찾게 된다는 단 하나의 빛깔, 작가가 백자를 시작하여 그 유약의 색을 찾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빛깔은 작가의 오랜 실험과 치밀한 연구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개인적 정서가 걸러지고 감성이 투명하게 정련되어 배어 나오는 자연스러운 빛깔이기도 하다. 그것은 작가 개인이 지닌 문학적 감수성의 결정(結晶) 일 수도, 삶의 여정에서 조탁(彫琢) 된 정신적 비전일 수도, 나아가 한국민족의 보편적 정서가 응결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얼음처럼 투명하고 심연처럼 깊은 빛깔에 호응하여 작가의 작품은 하나같이 간결하게 응축된 형태미를 보여준다. 도기(陶器)의 형(形)도 간소하고 담박한 형태이고, 인체를 모티브로 한 조소적 형태 역시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절제되어 간명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물론 그 기본 형태로의 환원은 서구의 미니멀 한 미술처럼 비본질적 요소를 인위적으로 제거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개인적 정서와 감성을 자연스럽게 누적시켜 정련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 정적인 형태들은 긴장감을 주면서도 너그럽고, 소박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준다. 이러한 형태의 응축과 단순화는 빛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작가 내면의 시정(詩情)을 응축하고, 작품 바깥의 세계의 본성과 공명하고 만물에 담겨있는 정수(精髓)를 집약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와 관련될 것이다.
    권상인의 도예 작품은 여러모로 이기주의 작품과 훌륭한 대비를 이룬다. 두 작가의 작품은 형태나 빛깔, 질감과 기법, 그리고 작품이 배태(胚胎) 되는 정신적 기조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이기주의 작품이 내부로의 ‘응축’을 지향한다면 권상인의 작품은 ‘확산적 상태’를 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기주의 작품이 내부로 에너지를 끊임없이 응결시킨다면 권상인의 작품은 섬세한 균열을 통해 내포된 에너지를 미세하게 분출시키고 있다. 또 이기주의 작품이 균형과 절제를 바탕으로 한다면, 권상인의 작업은 변화와 확장의 상태를 지향한다. 권상인의 작품들이 흔히 ‘설치’라는 방법론에 의해 배열되는 것도 이러한 작품의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기법상으로도 두 작가는 판이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기주가 어떤 궁극의 상태에 작품을 근접시키기 위해 기교를 최대한 배제한다면, 권상인은 점토에 물감을 혼합하거나 유약의 흘러내리고 균열의 의도적 발생 등 도예에서 가능한 다양한 기법이 이용된다. 한편 두 작가는 작업이 시작되는 정신적 기저에서도 차이를 보여준다. 즉 이기주의 작품이 작가 내면에서 배어 나오는 시정(詩情), 곧 문학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면 권상인의 작품은 작가 외부의 세계와 마찰하고 호응하는 감수성에서 시작된다.
    권상인의 작품은 상상의 시각, 혹은 의식으로서만 인식되는 세계에 대한 감성적 조응으로 생각된다. 불가시적의 영역을 현시(現視) 하는 것은 자유로운 사유와 거듭되는 명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에너지를 소진(燒盡) 해 가는 행성의 모습이나 생명체를 이루는 극소 단위 내부의 유기적 질서를 연상하게 하는 그 작품들은 매크로(macro)와 마이크로(micro), 코스모스(cosmos)와 카오스(chaos)를 함께 담고 있다. 거시적 질서와 미시적 무질서가 공존하고 있다. 작품 표면의 프랙털 한 질서와 입방체와 구형이라는 기하하적구조가 대비를 이루고, 유기적 질감과 무기적 재질감을 공존하는 양상은 권상인의 작품이 역동적 변화를 잠재하고 있으면서도 명상적이고 묵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유일 것이다.
    세계의 광활함 혹은 미적 세계의 미묘함을 담고 있는 그 작품들은 팽창과 축소를 반복하는 우주에 대한 메타포이거나 생성과 자멸을 되풀이하는 생명체의 원형적 질서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우리 몸의 구성요소가 먼 우주에서 비롯된 것처럼 어쩌면 세계는 거시 세계가 미시세계로 권상인의 작품이 보여주는 둥근 구(球)처럼 하나로 연결된 순환적 양상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는 이기주의 간결하고 투명한 도자가 외계(外界)의 모호한 본성과 불명료한 질서를 단아하게 담아내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서로 선명하게 대비되는 양식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의 작품은 영겁(永劫)으로 누적(累積) 된 공간과 시간성을 담아내고 있는 대극(對極) 되고 상층 되는 요소를 조응(調應) 시켜 분화되지 않는 극점을 지향하고 있다. 물론 이는 동양의 시공간 개념과 이원론을 거부하는 전일적(全一的) 사유체계와 연결되어 있지만, 동서양을 떠나 모두에게 명상의 기회와 정신의 평화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